그랜 토리노-자기 일생의 오마주 영상극장

크린트 이스트우드...
이 양반... 대가라고들 하는데 내겐 B급 무비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던
담배 질겅질겅 씹던 진짜 B급스러운 배우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게 남아있다.
사실 크린트 이스트우드 하면 <황야의 무법자>나 <더티 하리>가 떠오르지,
<밀리언달러 베이비>나 <그랜토리노>가 왠말이냐.

그래도 그 옛날 개봉관에서 봤던 <용서받지 못할 자>는 그 의외성에 꽤 놀랐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뭐랄까, 미국이라는 거대 공장에서는
거의 생산된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자기 해부형’ 영화랄까. 그러니까 이건
‘자기 반성’과도 다른 말인데,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역사도 짧고 전설이나 신화도 거의 없는 미국에서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전설적 역사 시대인 ‘서부시대’를 그렇게 까발겨 버리다니...(요즘 말로
개발렸다고 하던가.)
그 자신 서부의 고독한 영웅을 상징하고 그 이미지로 수십 년 먹고 살던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영웅’들의 비겁하고 추악한 모습을 요만큼의
가감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들춰냈다는 건 우와, 대단한 충격이었다.
내가 무슨 영화 분석을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이제껏 그런
서부영화를 본 적이 없거든.

그러나 <밀리언달러 베이비> 같은 영화는, 좋은 영화 같기는 하지만
내겐 참 지루하고 끔찍하고 슬픈 영화였다. 영화로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랄까.
이 양반, 대가연하는구나 싶어 그가 연출한 다른 영화들을 찾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랜토리노>는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마지막 출연하는 영화라고 해서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파국의 조짐 때문에 불안했고, 동양인의 입장에서
더 불편했다. (서양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간혹 영화에 한국인이 나올 때,
그걸 카메라의 시점-그러니까 서양인의 시점-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랜토리노>는 내게 그닥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다 보고 나서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한 시대를 제대로 풍미한 배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정말 익숙한 장면 아닌가. 수많은 악당들 앞에 홀로 선 황야의 무법자 컨셉...
담배를 질겅이며, 티꺼운 듯 치뜬 가느다란 눈을 꿈틀거리며 좌에서 우로 한번,
우에서 좌로 한번 흝어본 뒤, 번개처럼 총을 뽑아 갈기면 우르르...
악당들이 수수단처럼 쓰러지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번에도 갈기긴 갈겼는데 손가락 총이었다.
그리곤 트레이드 마크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찾는다며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러면서 그가 나직하게 내뱉은 말...
“은총이 가득한 성모 마리아님.”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정말 한 시대가 저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출연작이라면서... 좀 더 멋지게 흘릴 말도 많은텐데... 

황야의 무법자에 더티 하리의 주인공이 겨우 ‘은총이 가득한 성모 마리아님’이라니...
이스트우드 영감, 자기 평생의 이미지를 딱 한마디로
완벽하게 전복해 버리고 끝냈구나.
이거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가 아닐까 싶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moonger.egloos.com/tb/4648985 [도움말]